
요즘은 책을 안 읽어서 걱정이라기보다, 너무 많은 글과 영상 속에서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더 걱정될 때가 많습니다. 검색만 하면 정보가 쏟아지고, AI가 글까지 대신 써 주는 시대에 독서교육은 예전처럼 “책 많이 읽히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저도 육아를 하면서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와 함께 겪어 온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AI시대에 꼭 필요한 독서 교육의 핵심인 ‘정보를 고르는 힘, 내용을 이해하는 힘, 내 생각으로 표현하는 힘’을 어떻게 길러 줄 수 있을지 경험담과 현실적인 팁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책과 글을 고르는 연습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추천 도서 목록을 보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근데 꼭 책으로만 읽어야 해요? 유튜브로도 다 설명해 주는데요?” 순간 할 말이 막히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됐습니다. 요즘 아이들 입장에서는 영상, 웹툰, 짧은 글, 심지어 AI가 요약해 준 글까지 이미 ‘읽을거리’가 넘쳐 나니까요. 저도 스마트폰으로 기사와 글을 수시로 읽으면서, 정작 종이책은 자꾸 미루게 되는 제 모습을 보며 아이만 탓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서교육을 “책 많이 읽히기”에서 “무엇을 읽을지 같이 골라 보기”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보는 유튜브, 웹 글, AI가 만들어 준 텍스트까지도 “이건 나쁜 거, 저건 좋은 거” 이렇게 나누기보다, 함께 들여다보면서 “이 글(영상)은 왜 만들었을까?”, “누구한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 같아?”를 이야기해 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아, 세상에 있는 글이 다 같은 목적을 가진 건 아니구나”라는 걸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책을 고를 때도 예전에는 “이거 읽어, 이게 좋아”라고 제가 정해서 쥐여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아이가 책을 ‘숙제’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 아이에게 고르는 기준을 두세 가지 정도만 제안해 주고 스스로 골라 보게 했습니다. “너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랑 관련 있는 책 하나”, “표지나 제목이 이상하거나 웃기게 느껴지는 책 하나”, “너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주인공이 나오는 책 하나”. 이렇게만 정해도 아이가 책장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른 이유를 꼭 말해 보게 했습니다. “왜 이 책을 선택했어?”라고 물으면, 그 답 안에 아이의 관심사와 호기심의 방향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이미 정보 선별 연습이 되었습니다. AI가 추천해 주는 책 리스트도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초등학생에게 좋은 책 추천해 줘”라고 챗GPT나 다른 서비스에 물어보고, 그 리스트를 아이와 같이 보며 “이 중에서 우리가 정말 읽고 싶은 책은 뭐야?”, “이 제목은 왜 끌려?”를 이야기해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점점 “누가 추천했냐 보다, 내가 진짜 읽고 싶냐가 더 중요하구나”라는 신호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정보 선별은 책과 영상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학습 자료조차도 너무 많아서, 아이가 “이거 다 해야 해요?”라고 물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이번 주에 꼭 알아야 하는 핵심 주제는 뭐지?”, “이걸 이해하는 데 진짜 도움이 되는 자료는 뭐라고 생각해?”를 함께 고르는 연습을 했습니다. AI 시대의 독서 교육은 결국, 아이가 “남들이 좋다니까”가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궁금해서, 의미 있어서” 선택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걸, 저도 아이와 함께 조금씩 배우는 중입니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해 전략
책을 읽고 나서 제가 아이에게 “어땠어?”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재밌었어요” 아니면 “그냥 그랬어요”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만 들어도 “그래, 읽었으니 됐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어느 날 시험공부를 하던 아이의 말이 마음에 확 박혔습니다. “엄마, 읽었는데 머리에 안 남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아, 이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구나. 읽는 순간을 그냥 지나가게 두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읽은 뒤 5분’을 조금 다르게 써 보기로 했습니다. 거창한 독서록이나 긴 독후감이 아니라, 아주 가볍게라도 ‘정리하는 시간’을 꼭 넣어 보는 거였습니다. 처음 시도한 건 “한 줄 요약 놀이”였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말해보자”라고 했고, 아이가 막막해하면 제가 먼저 예시를 보여 줬습니다. “주인공이 실수하면서도 조금씩 성장해 가는 이야기”, “친구 사이 오해가 풀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 등. 이런 식으로 예시를 통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도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용의 핵심을 붙잡는 연습을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교과서나 정보글을 읽을 때는 ‘질문 붙이기’도 해 봤습니다. 한 단락을 읽고 나면, 그 단락 옆에 연필로 물음표를 하나 그리고, 거기에 궁금한 점을 짧게 쓰는 건데 이것도 지루 하지 않게 하나의 게임처럼 진행해 보았습니다.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왜 심각해졌지?”, “언제부터?” 같은 질문을 살짝 적어 두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질문들을 모아 다시 챗GPT나 책으로 찾아보는 시간까지 연결해 주면, 읽기-이해-탐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으로 정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긴 설명글을 읽고 나서 마인드맵을 그려보거나, 흐름을 간단한 만화처럼 칸을 나눠 그려보는 방법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 ‘시간순서 화살표’를, 과학 개념을 읽으면 ‘원인→결과’ 구조를 화살표나 상자로 표시해 보게 했습니다. 저희 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인지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어요”라고 이야기했고 이 방법은 생각보다 부담 없이 받아들여져서, 저 역시 아이가 내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입니다. AI도 이해를 돕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아이가 “여기 부분이 이해가 안 돼요”라고 할 때, 그냥 다시 읽으라고만 하지 않고, 챗GPT에게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줘”라고 함께 물어봤습니다. 그 답을 읽고 나서 다시 책을 읽으면 “아, 그래서 여기 이런 말이 나오는 거구나” 하고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이때도 저는 “AI가 이렇게 설명해 주긴 했는데, 너 생각엔 어때?”라고 꼭 물어봤습니다. 이해의 기준을 AI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에게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느낀 건, 아이가 “읽었는데 남는 게 없다”라고 느끼는 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인 저도 자주 겪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스마트 기기와 빠르게 발달하는 AI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젠 함께 읽고, 함께 질문하고, 함께 끄적이는 시간을 통해 ‘읽기’를 ‘생각하는 시간’으로 조금씩 바꿔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독서교육은, 결국 정보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작은 습관들을 얼마나 자주 반복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읽은 것을 표현으로 이어 주는 연습
아이 독서교육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표현’이었습니다. 책도 나름대로 읽고, 이해도 어느 정도 한 것 같은데, 막상 “어떻게 느꼈어?”, “뭘 배웠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몇 마디 안에 끝나 버리는게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날은 독후감을 쓰다가 아이가 “머릿속에 있는 말을 글로 쓰기가 너무 어려워요”라고 이야기해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도 아이에게 “느낀 점 써 봐”라고만 했지, 그걸 어떻게 꺼내서 말로 만들고 글로 옮기는지는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바로 글쓰기’ 대신 ‘먼저 말하기’부터 연습해 보기로 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식탁에 가볍게 앉아서 “이 책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을 하나만 얘기해 줄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말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 뒤, “그때 네 마음이 어땠는지도 한 번 말해 볼래?”라고 한 질문만 더 얹었습니다. 이렇게 ‘내용 설명 → 감정 표현’ 두 단계만 말로 해 보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글을 쓸 때 훨씬 수월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또 하나 효과 있었던 방법은 ‘틀을 먼저 주는 표현 연습’이었습니다. 독후감을 쓸 때, 아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롭게 쓰라고 하면 막막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한 문장 틀을 몇 개 만들어 줬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은 ○○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라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서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 부분에서 이렇게 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방법으로 말이죠.
아이에게 “오늘은 이 네 문장만 완성해도 성공이야”라고 말해 주니, 부담이 확 줄어든 얼굴로 펜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몇 번 하다 보니, 아이가 스스로 “이 틀 말고 제가 한 문장만 더 써 봐도 돼요?”라고 말했을 때 그때만큼은 제가 했던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서 마음속으로 크게 박수를 쳐 줬답니다. AI도 표현 연습에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독후감을 쓴 뒤 챗GPT에게 “초등학생이 쓴 독후감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고쳐 줘. 하지만 내용은 그대로 살려 줘”라고 부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문장 표현이 조금 다듬어진 버전이 나오는데, 저는 그걸 아이에게 그대로 주지 않고, 두 글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게 했습니다. “어느 표현이 더 마음에 들어?”, “왜 그렇게 느꼈어?”를 묻다 보면, 아이가 “아, 이런 연결어를 쓰니까 문장이 더 부드럽구나”, “같은 말을 이렇게도 쓸 수 있네”를 스스로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때마다 “봐, 네 글도 조금만 다듬으면 이렇게 멋져질 수 있어”라고 말해 주면서, 아이의 ‘표현 자존감’을 살려 주려고 했습니다. 말하기와 쓰기만이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한데로 저희 아이처럼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면 책 속 한 장면을 그림으로 다시 표현해 보게 하거나, 만약 이 이야기의 다음 장면을 상상해서 만화 한 칸으로 그려 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 뒤에 “이 그림 설명을 한두 문장으로 해볼까?”라고 제안하면, 자연스럽게 그림에서 글로, 상상에서 문장으로 이어지는 연습이 됐습니다.
이런 작은 시도들을 반복하면서 느낀 건, 표현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문장 하나, 짧은 말 한마디부터 천천히 늘려 가는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AI가 대신 멋진 글을 써 줄 수는 있지만, 아이 마음속에 있는 진짜 생각과 감정을 꺼내 주는 일은 결국 가까이 있는 부모인 우리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가 “내 생각을 내 말로 말하고 싶다”는 욕구를 잃지 않도록 옆에서 자주, 천천히 물어봐 주려고 노력 중입니다.
AI시대의 독서교육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세 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 ‘무엇을 읽을지’를 고르는 힘, 읽은 것을 질문과 정리 활동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 그림으로 ‘표현하는 힘’입니다.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한 독서 코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 곁에서 함께 고르고, 함께 이해하고, 함께 표현해 보는 경험을 조금씩 늘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책 한 권을 더 권하기보다, 이미 읽은 글이나 영상 중 하나를 골라 “이건 어떻게 느꼈어?”라며 한 번 더 물어봐 주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 작은 질문 하나가 AI 시대 우리 아이의 독서력을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