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뉴스가 쏟아지고, 학교에서도 “미래역량”을 강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도 아이를 볼 때 자꾸 성적과 스펙, 공부 이야기만 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점수가 아니라 표정과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발 물러나 ‘AI시대에 정말 흔들리지 않아야 할 건 결국 이 아이의 마음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제가 아이와 부딪히고 미안해하고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배운 감정코칭 육아 이야기를, 공감·자존감·회복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담아 보려고 합니다.
공감부터 다시 시작
어느 날 저녁, 아이가 숙제를 하다가 갑자기 공책을 꽝 닫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나 그냥 공부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어차피 AI가 다 해 주잖아요.” 그 순간은 제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먼저 욱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말이야 방구야? 네가 생각을 해야지, 다 AI 시키면 네 머리는 뭐하니?” 그런데 그 말을 내뱉고 난 뒤, 아이 얼굴이 굳어지면서 눈가가 붉어지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 또 먼저 화부터 냈구나. 이 아이는 지금 미래를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뒤, 저는 감정코칭 책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고치고 싶다면, 먼저 아이의 감정을 알아봐 주어야 한다.” 너무 잘 아는 말인데도, 막상 현실에서는 늘 거꾸로 하고 있었던 저를 반성하게 해 주는 문구입니다. 그 다음 날, 아이가 비슷한 투로 “공부하기 싫다”고 말했을 때 저는 일부러 반응을 바꿔 봤습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이렇게 시작했어요. “그럴 때 있지. 엄마도 회사 다닐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수십 번 했어. 지금 네 마음이 얼만큼 힘든지 1부터 10까지 숫자로 말해 본다면 몇 정도야?” 아이에게 숫자로 표현해 보라고 하니, 의외로 잘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한 8 정도? 진짜 짜증나는 수준.” 그 말을 듣고 저는 “8이면 꽤 크네. 그 정도면 진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나올 만하겠다”라고 먼저 공감해 줬습니다. “근데 네가 그렇게 말해도 엄마가 화부터 내서 미안해. 네 마음을 먼저 들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제 실수도 인정하고 나니, 아이 얼굴에서 서서히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제야 아이는 “사실 요즘 친구들이 AI 쓰는 얘기만 해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해도 못 따라갈 것 같고”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AI 시대라고 해서 아이의 걱정이 갑자기 ‘기술적인 고민’으로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을요. 여전히 아이는 비교 속에서 불안하고, 잘하고 싶어서 조급하고, 혼나지 않고 싶어서 포장된 말을 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아이의 불안과 짜증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마음을 찾아주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속으로 세 가지를 떠올립니다. 첫째, “지금 이 아이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둘째, “그 감정이 생길 만한 이유가 이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했을까?”, 셋째, “지금 당장은 해결책보다 공감이 먼저일까, 아니면 안전을 위해서 제지가 먼저일까?” 예를 들어 게임 시간을 지키지 못해 제가 화가 날 때도, 그 자리에서 “약속 어겼어!”만 외치기보다 “그만두고 싶은데 멈추기 어려웠지? 재밌는 걸 멈추는 건 어른도 힘들거든”이라고 한 번은 공감해 주고, 그다음에 “그래도 우리 둘이 같이 정한 약속이니까,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멈추기 쉬울지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공감은 아이의 행동을 그냥 허용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다뤄 주겠다는 약속이라는 걸 요즘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지켜 주기 위한 말 습관
AI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비교가 너무 쉽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검색만 하면 다른 아이들의 포트폴리오, 수상 실적, 멋진 프로젝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유튜브에는 또래 아이들이 이미 영어로 유창하게 발표하는 영상이 넘쳐납니다. 어느 날 아이가 그런 영상을 보고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저런 애들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저릿함을 느꼈습니다. 아직 어린 이 아이가 벌써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니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말할 뻔했습니다. “아니야, 너도 잘하고 있어. 그런 애들이 특별한 거지.” 그런데 이 말이 아이의 마음에 제대로 닿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넌 괜찮아”라고 말한다고 해서, 아이의 마음속 비교표가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경험을 먼저 꺼내 보았습니다. “엄마도 너만 했을 때 TV에 나오는 엄청 똑똑한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건, 세상에 꼭 눈에 띄게 잘하는 것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였어.” 그다음으로 제가 의식적으로 바꾼 건, 아이를 칭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시험 점수가 잘 나왔을 때 “와, 90점이야? 역시 똑똑한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칭찬은 점수와 능력에 자존감을 걸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늦게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과정’과 ‘태도’를 중심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어려운 문제도 끝까지 포기 안 하고 풀었네. 그 끈기가 엄마는 제일 좋더라”, “틀린 문제를 다시 보는 게 쉽지 않은데, 네가 스스로 다시 풀어보겠다고 한 게 정말 대단하다”처럼 이야기해 줍니다. 또 하나 신경 쓰는 부분은, 아이가 실패를 이야기할 때의 반응입니다. 예전에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그 정도 가지고”라고 가볍게 넘겨 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그 실패가 나름대로 큰 사건일 때가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가 “시험 망했어”라고 했을 때, 먼저 “그래서 마음이 어때?”를 묻습니다. “창피해, 속상해, 화나” 같은 말이 나오면 “그럴 수 있겠다. 엄마라도 그런 마음 들 것 같아”라고 공감해 준 뒤, 마지막에 꼭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일이 네 전체를 말해 주는 건 아니야. 그냥 오늘 하루, 한 번의 결과일 뿐이야.” 아이가 자기 자신 전체를 한 번의 실패와 동일시하지 않도록 계속 상기시켜 주는 방법의 화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AI와 연결된 자존감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할 때 챗GPT나 검색 결과를 참고하면, 저는 일부러 이렇게 물어봅니다. “여기 나온 답 중에서 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뭐야? 그리고 네 생각이 더해지면 어떻게 바꾸고 싶어?” AI가 내놓은 답이 ‘정답’이 아니라 ‘도움 자료’라는 감각을 갖게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의견을 한 줄이라도 덧붙이는 그 순간, 저는 크게 칭찬합니다. “그래, 이건 너만 쓸 수 있는 문장이야. AI는 이런 표현은 못 해.” 아이 내면에서 ‘나는 그냥 따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내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자라나기를 바라면서요.
AI시대 넘어지는 연습이 주는 회복의 힘
감정코칭을 배우면서 저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됐습니다. AI가 아무리 정확하고 빠르게 답을 내놓아도, 삶에는 여전히 실수와 실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난 뒤 다시 일어나는 힘, 즉 회복탄력성이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아이가 실패를 겪는 순간이 오면, 저부터 그 상황을 피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곤 했습니다. 아이가 학교 발표 시간에 너무 긴장해서 말을 더듬고, 발표가 끝난 뒤 울먹이며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나 다시는 발표 안 할래. 너무 창피했어”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제 안에서도 “그럼 다음에는 발표 안 시켜 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이 경험을 어떻게 다뤄 주느냐에 따라, 이 아이에게 발표는 평생 피하고 싶은 일이 될 수도, 언젠가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실패 복기 회의’를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먼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정말 힘들었겠다. 엄마도 네 얘기 듣는데 가슴이 덜컥했어. 근데 네가 용기 내서 그 자리까지 나간 것만으로도 엄마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말을 건네고 나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충분히 울고, 속상함을 어느 정도 털어낸 뒤에야 저는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만약 시간이 조금 지나서, 이 일을 떠올렸을 때 그냥 너무 창피한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다시 발표를 하게 된다면, 오늘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처음에는 “도움 같은 거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아이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친구들 앞이 아니라, 먼저 엄마 앞에서 연습해 보고 싶어요. 그러면 덜 떨릴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저는 속으로 ‘아, 이게 바로 회복의 씨앗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패 후에도 “다시는 안 할래”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다시 할 수 있을까?”로 방향을 틀어 보는 그 작은 움직임이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이가 어떤 도전에서 넘어졌을 때, 바로 “괜찮아, 다음엔 잘할 거야”라고 다독이기보다 이렇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다시 할 마음이 0에 가깝니, 아니면 10에 가깝니?” 숫자로 물어보면 아이도 마음을 정리하기가 조금 수월한지, “지금은 3 정도? 근데 나중에는 6까지는 올라갈 것 같아요”처럼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좋아, 그 3을 4로, 4를 5로 만들려면 뭐가 도와줄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합니다. 연습 횟수일 수도 있고, 도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일 수도 있고,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것일 수도 있죠. AI와 회복을 연결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글쓰기 과제를 망쳤다고 느낄 때, 저는 챗GPT에게 이렇게 부탁해 보라고 합니다. “내가 쓴 글에서 좋은 점 세 가지와, 다음에 보완하면 좋을 점 두 가지를 알려줘.” 그리고 그 답을 함께 읽으면서 “봐, 네 글에도 이미 좋은 점이 이렇게 많아. 다만 다음에는 여기 부분만 조금 더 신경 쓰면 되겠대”라고 말합니다. AI를 ‘완벽한 답을 내놓는 존재’가 아니라, 실패 후에 다시 시도할 방향을 같이 생각해 주는 코치로 활용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도 실수했을 때 AI를 숨는 곳으로 쓰기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는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이제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대신 많이 흔들려도 괜찮으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아이, 실패했을 때 “난 역시 안 돼”가 아니라 “그래도 한 번 더 해 볼 수 있을까?”를 떠올리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회복의 힘은 거창한 멘토링이 아니라, 매일매일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고, 작은 성공과 용기를 발견해 주고, 실수한 날 묵묵히 옆에 있어 주는 부모의 태도에서부터 자라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I시대 감정코칭 육아를 거창하게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제가 아이와 함께 부딪히며 얻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려는 공감, 결과와 비교가 아닌 존재 자체를 존중해 주는 자존감, 그리고 실패하고 흔들려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회복의 경험이었습니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아이의 눈빛을 읽고 “오늘은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부모뿐입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한 마디 건네 보시면 어떨까요. “요즘 네 마음은 몇 점 정도야? 10점 중에 솔직하게 말해 줄래?” 그 질문 하나가, AI시대 우리 아이 마음을 지켜 줄 감정코칭의 시작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