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아이에게 던질 때마다, 저는 속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작 저 자신도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내가 정말 어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천천히 탐색해 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만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이 어딘가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미래직업 대비 자녀교육’에 대해 공부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진로교육은 거창한 진로검사나 특강보다, 아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보고, 다양한 어른들에게 질문해 보고, 그 경험들을 차곡차곡 기록해 보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요. 이 글에서는 제가 아이와 함께 집과 학교, 동네 안에서 해 본 진로탐색 실전활동들을 체험·인터뷰·기록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작은 체험에서 시작된 진로 탐색
아이에게 어느 날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저는 나중에 유튜버 할래요.” 순간 속으로는 ‘또 유튜버야…’ 하는 탄식이 올라왔지만, 겉으로는 일단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어봤습니다. 아이는 다소 당당한 표정으로 “유튜버는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말도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바로 “그게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아니?”라고 훈계 모드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습니다. 대신 ‘그래, 그럼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 보게 해 주자. 직접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몰라’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 본 진로탐색 체험은 바로 “유튜버처럼 살아보기 1일 프로젝트”였습니다. 진짜 채널을 열어 수익을 노리자는 게 아니라,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 회의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한 영상인지, 어떤 내용을 담을지,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를 아이와 함께 적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유튜브를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타깃과 주제를 정하다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네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다음으로는 대본을 쓰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이에게 “그냥 즉흥으로 말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물었더니, 스스로 “그래도 적어 놓고 하는 게 덜 버벅거릴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A4 용지 한 장을 주고 “처음 인사, 내용 세 가지, 마무리 인사” 정도의 틀만 잡아줬습니다. 아이가 몇 번을 지웠다 쓰면서 겨우 1~2분 분량의 대본을 완성했고, 휴대폰으로 촬영을 해 보았습니다. 막상 카메라 앞에 서자 아이는 생각보다 더 긴장했고, NG를 여러 번 내면서 힘들어했습니다. 촬영과 편집까지 끝내고 나서 아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엄마, 유튜버도 진짜 힘든 직업이네요. 그냥 말만 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 경험 이후로 아이의 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저는 그냥 유명한 사람 되고 싶어요”에서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직업 이름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직업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몸으로 느껴 보게 한 것이 진로탐색의 첫걸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우리는 다양한 “1일 직업 체험”을 우리 방식대로 시도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카페 사장님이 궁금하다면, 집에서 “1일 홈카페”를 열어 메뉴 구성·정리·정산까지 해 보기, 작가가 궁금하다면, “1일 동화 작가”가 되어 단편 그림책 한 편을 만들어 가족에게 읽어 주기, 선생님이 궁금하다면, 동생이나 부모를 대상으로 “1일 수학 선생님 수업”을 준비해 보기.아이에게 “직업은 단지 멋져 보이는 이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의 묶음”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직접 해 보니, 어떤 일은 더 흥미로워 보이고, 어떤 일은 생각보다 힘들어서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저는 그것도 소중한 진로탐색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직업은 내 길이 아니다’를 미리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체험을 자주 해 볼수록 아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이 직업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막연하게 말하던 아이가, 이제는 “이 직업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점이 좋았고, 대신 이런 부분이 조금 힘들어 보였어요”라고 장단점을 같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로탐색 체험은 아이에게 ‘미래를 결정하라’고 압박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고 시야를 넓혀 주는 시간이라는 걸, 저도 아이와 함께 몸으로 느끼는 중입니다.
어른 인터뷰가 열어 준 진짜 이야기
체험이 ‘몸으로 느끼는 진로탐색’이라면, 인터뷰는 ‘귀로 듣는 진로탐색’ 같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 진로수업에서 직업카드를 가지고 활동을 하고 온 뒤,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카드에 있는 설명만 보고는 실제로 어떤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맞다, 결국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생생한 자료는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인터뷰해 보고 싶은 직업 목록”을 써 보았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가까운 곳에서 찾았습니다. 평소 아이에게 친근한 우리 동네 빵집 사장님이었습니다. 아이가 그 빵집을 참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가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다른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 제가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더니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아이는 미리 준비해 간 질문지를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질문지는 아이와 함께 전날 밤에 준비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그래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요?, 이 일을 꿈꾸는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질문을 쓰면서도 아이는 “이렇게까지 물어봐도 돼요?”라며 긴장했지만, 저는 “정중하게 묻는다면 어른들은 생각보다 기쁘게 얘기해 주실 거야”라고 응원해 줬습니다. 인터뷰 날, 사장님은 새벽에 나와 반죽을 하는 이야기, 손님이 많을 때는 허리를 펼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빵 정말 맛있어요” 한마디에 피곤이 싹 날아가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받아 적으며 듣다가, 마지막에 조용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빵집 사장님은 그냥 빵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손님들 기분을 챙겨주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 말에 사장님도 웃으시면서 “그래, 사람 상대하는 일이니까 정성과 서비스가 진짜 중요하지”라고 덧붙여 주셨습니다. 이 경험 이후로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다양한 어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보려고 했습니다. 친척 중 공무원, 간호사, 개발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 학원이나 학교 선생님, 교회나 지역 모임에서 알게 된 어른들. 인터뷰 대상이 멀리 있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이 직업은 실제로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고, 그 답을 자기 귀로 듣는 경험이었습니다. 챗GPT도 인터뷰 준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인터뷰 전날, 우리는 AI에게 “초등학생이 ○○ 직업을 가진 어른을 인터뷰하려고 해. 예의 바르면서도 궁금한 점을 잘 물어볼 수 있는 질문 5가지를 추천해 줘”라고 물어봤습니다.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아이와 다시 고치고 덧붙이며, 자기만의 인터뷰 질문지를 완성했습니다. 실제 인터뷰를 한 뒤에는 다시 챗GPT에게 “오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문단 구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줘”라고 물어보며 구조를 잡는 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던 건, 인터뷰가 쌓일수록 아이의 질문도 조금씩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돈은 많이 버나요?”, “힘든 점은 뭐예요?” 같은 단순한 질문이 많았다면, 나중에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릴 때 꿈꾸던 일과 지금 하는 일이 다르다면, 그 사이에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같은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진로탐색이 단순히 직업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기록과 포트폴리오로 이어주기
체험과 인터뷰를 몇 번씩 하다 보니, 한 가지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그때그때는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여러 생각을 쏟아내는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고,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되면 이전 경험이 겹쳐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록’이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진로탐색 실전활동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아이의 성장 과정으로 남으려면,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은 아주 단순한 “진로탐색 노트”였습니다. 공책 맨 앞장에 크게 제목을 적었습니다. “○○의 진로탐색 노트 – 내가 해 본 것, 만나 본 사람들, 느낀 것들” 그리고 체험이나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한 장씩 정리해 넣었습니다. 각 페이지에는 네 가지 항목을 꼭 적도록 했습니다. 1)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체험·인터뷰 기본 정보), 2) 기억에 남는 장면 또는 말 한 가지, 3) 내가 새로 알게 된 것 두 가지, 4) 앞으로 더 해 보고 싶은 것 또는 궁금해진 것 한 가지. 처음했던 빵집 사장님 인터뷰 후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말: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새로 알게 된 것: 새벽 3시에 출근해서 반죽 준비를 한다는 것, 재료를 아끼면 바로 맛에 티가 난다는 것, 더 해 보고 싶은 것: 나중에 집에서 가족들만을 위한 빵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사진도 적극적으로 붙였습니다. 체험 활동 중 찍은 사진, 인터뷰 중 함께 찍은 사진, 프로젝트 결과물 사진을 인쇄해 페이지 한쪽에 붙여 두었습니다. 아이는 나중에 그 노트를 펼쳐 보며 “아, 이때 이런 얘기 했었지” 하며 다시 떠올리곤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일부러 시험 전날 같은 때가 아니라, 주말 저녁이나 방학 초반처럼 마음이 비교적 여유로울 때 가졌습니다. 진로탐색이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조금 익숙해진 뒤에는 디지털 포트폴리오도 함께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클라우드에 “진로탐색”이라는 폴더를 만들고, 그 안에 체험 활동 사진 폴더, 인터뷰 녹음 파일 또는 메모 폴더, 아이가 쓴 소감문이나 발표 자료 폴더를 나누어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문서 하나를 따로 만들어 “연도별 진로탐색 활동 목록”을 적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거나, 진로와 관련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때, 이 포트폴리오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 스스로 “내가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해 봤구나”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AI를 조심스럽게 활용했습니다. 아이가 인터뷰 후 소감문을 쓰고 나면, 챗GPT에 “이 내용을 바탕으로 3문단으로 정리된 글 구조를 제안해 줘”라고 부탁한 뒤, 그 구조에 맞추어 아이가 자신의 문장을 다시 정리해 보게 했습니다. 또한 여러 번의 체험과 인터뷰 내용을 함께 정리할 때는 “○○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공통된 깨달음 세 가지를 뽑아줘”라고 묻고, 나온 키워드를 참고해 포트폴리오 맨 앞장에 ‘나의 진로탐색 키워드’로 적어 넣기도 했습니다. 다만 “AI가 정리해 준 말보다, 네가 직접 느낀 표현이 더 중요해. 여기 나온 단어 중에서 진짜 네 마음에 와 닿는 것만 골라서 쓰자.” 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진로탐색 노트와 포트폴리오가 조금씩 두꺼워질수록, 아이도 자신의 변화를 더 잘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노트를 펼쳐보다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엄마, 예전에는 사람 많은 직업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용히 글 쓰거나 디자인하는 일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이 기록들이 단순한 활동 정리를 넘어, 아이 마음의 변화를 담는 일기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결국 기록은 “진로를 정해 놓는 작업”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 가는 과정”을 눈에 보이게 해 주는 도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새로운 체험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날의 피곤함을 조금만 참고해서라도 노트 한 페이지, 폴더 하나를 채워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아이가 자기 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 이 기록들이 “너는 이미 이런 것들을 해 본 사람이야”라고 조용히 말해 주는 든든한 증거가 되어 줄 거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진로탐색 실전활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캠프나 비싼 프로그램만 떠올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체험 하나, 주변 어른에게 용기 내어 건네는 인터뷰 몇 번, 그리고 그 경험들을 잊지 않도록 간단히 남겨 두는 기록과 포트폴리오만으로도 아이의 눈빛과 말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미래 직업을 지금 당장 정해라’가 아니라, ‘나는 어떤 경험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의 삶에 마음이 끌리는지’를 알아 가는 과정에 아이와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아이와 산책을 하면서라도 이렇게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요. “요즘 네가 가장 궁금한 직업은 뭐야? 우리 그 일에 대해 작은 체험이나 인터뷰, 기록 중 하나만 같이 해 볼까?” 그 질문 하나가, 우리 아이의 진로탐색을 현실로 끌어당기는 첫 번째 실천이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이번 경험도아이와 함께 쌓은 좋은 추억이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