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글을 써주고 전자책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수천 권의 책을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 집 거실을 종이책으로 채우는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홍수 속에서 아이에게 왜 굳이 무거운 종이책을 넘기게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목격한 아이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편리함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종이책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1. 뇌의 깊은 몰입을 돕는 ‘촉각적 경험’의 힘
전자책은 편리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자칫 '넘기기 쉬운 화면'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가뜩이나 요즘은 유튜브와 같은 시청각 자료도 많다 보니 빨리 보기에 길들여진 저희 아이는 영상도 지루하면 그냥 넘겨 버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약간 충격을 받았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얻는 촉각적 자극이 뇌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 공간적 기억력: 종이책은 "그 내용은 왼쪽 페이지 아래쪽에 있었어"라는 식으로 위치와 함께 기억됩니다. 이는 뇌가 정보를 입체적으로 저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집중의 깊이: 알림이 울리는 태블릿과 달리, 종이책은 오직 글자와 아이만 남겨둡니다. 30분 동안 묵묵히 책장을 넘기며 아이는 '딥 워크(Deep Work)'의 즐거움을 배워갔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저는 일부러 아이와 집 근처 도서관을 방문해서 실물책을 직접 빌리게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아이도 그 분위기가 좋았던지 책 속에 깊이 빠져서 정독하는 모습입니다. 책도 읽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더 들었던 하루였습니다.
2. 훑어읽기가 아닌 ‘정독’으로 기르는 문해력
디지털 기기 화면에 익숙한 아이들은 정보를 빠르게 스캔(Scan)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깊은 사고를 요하는 고전이나 지식 정보 책은 정독이 필수입니다.
저희 아이도 처음에는 종이책을 지루해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10페이지라도 좋으니 소리 내어 읽어보자" 라거나, "소리내어 동생에게 읽어줘 보자"라는 규칙을 정한 뒤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동생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지 앞뒤 문맥을 다시 살피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은 단어는 AI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읽는 과정을 통해 아이의 어휘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엄마, 종이책은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태블릿은 자꾸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재촉하는 느낌인데 말이죠."
아이가 건넨 이 한마디는 제가 왜 종이책 독서를 고집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되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이책과 더 친하게 지내게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3. 디지털 피로도 감소와 정서적 안정
학교 수업도, 방학 루틴도 모두 화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요즘, 아이의 눈은 늘 피로합니다. 태블릿 화면을 보고 있는 아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정말 눈을 잘 깜빡이지 않더라고요. 이러니 눈이 늘 피로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종이책은 아이의 눈을 쉬게 해주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 블루라이트 차단 효과: 자기 전 20분 종이책 독서는 수면의 질을 높여주었습니다. 화면을 볼 때보다 훨씬 빨리 깊은 잠에 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소장하는 즐거움: 다 읽은 책을 책꽂이에 꽂으며 느끼는 "아, 내가 이 책 한권을 다 읽어서 뿌듯하다~"는 성취감은 디지털 데이터가 줄 수 없는 '자존감'을 형성해 주었습니다.

마치며..
AI가 정보를 요약해주는 시대일수록, 인내심이 부족해지는 현실에서 스스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인내심은 아이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종이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오늘 저녁은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아닌 소장용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한번 들러봐야겠습니다. 아이가 직접 고른 책의 냄새를 맡고, 첫 장을 넘기는 그 설렘이 우리 아이 미래를 바꾸는 가장 큰 교육의 시작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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