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공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주도 학습”이 뭐냐고 물으면, 저부터도 대답이 막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조금 바꾸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갑자기 자기주도적인 학생으로 만들겠다’가 아니라, ‘목표를 같이 세우고, 계획을 같이 짜 보고, 실행하는 작은 경험을 하나씩 늘려 보자’는 방향으로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작은 경험이 하나씩 두개씩 축적이 되고 습관이 되다 보면 그게 자기주도 학습의 기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챗GPT나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단계를 지나, 아이가 스스로 공부 구조를 만들어 가도록 돕기 위해 제가 실제로 시도해 본 방법들을 목표·계획·실행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와 아이가 조금씩 덜 싸우면서 공부를 이어 가게 해 준 현실적인 기록의 글입니다.
자기 주도 학습 습관 스스로 목표 세우기
저는 한동안 ‘목표’라는 말을 잘못 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번 시험에 90점 이상 맞자”, “월·수·금에는 무조건 영어학원 숙제 끝내기” 같은 말을 저는 목표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것은 대부분 제가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기대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가 목표 정해 놓고, 나는 그냥 따라가는 느낌이에요.” 그 말을 듣는데 정말 뜨끔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 저는 여전히 “엄마가 원하는 목표를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목표를 새로 세울 때, 일단 제 입을 조금 늦게 열어 보기로 했습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일요일 저녁, 간단히 간식을 먹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 공부 말고라도, 네가 꼭 해냈으면 하는 게 한 가지 있다면 뭐야?” 처음에는 “글쎄요, 게임 레벨 올리기요?”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게 무슨 목표야”라고 잘라 버렸겠지만, 이번에는 참고 물어봤습니다. “그래, 그것도 목표일 수 있어. 그럼 공부 쪽에서는? 시험이든, 숙제든, 단어든 뭐든 좋아.” 아이는 처음에는 또 공부이야기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아이 입에서 조금씩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수학 문제집 20쪽까지는 끝내고 싶어요”, “과학 단원평가 전에 정리 노트를 한 번은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때 저는 최대한 간단하게만 확인 질문을 했습니다. “그게 네 목표가 맞아? 엄마가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네, 제가 정한 거예요”라고 말하면, 저는 그제야 “좋아, 그러면 그 목표를 도와줄게”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아이가 세운 목표가 늘 적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주에는 “이번 주 안에 문제집 한 권 다 끝낼래요”처럼 너무 과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엄마는 그 목표가 멋있긴 한데, 너를 괴롭히는 목표가 되지 않을까 조금 걱정돼. 네가 보기에 가능성은 몇 퍼센트쯤 될 것 같아?”라고 물어봤습니다. 아이가 “음… 50%?”라고 말하면 “우리가 목표를 세울 때 70% 이상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게 좋대. 그럼 이번 주 목표를 조금 줄여볼까, 아니면 기간을 늘려볼까?”라고 함께 조정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느낀 건, 목표를 세우는 순간에 아이가 꼭 경험해야 할 감정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래, 이 정도면 내가 해 볼 수 있겠다”라는 감각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학기 초가 되면 큰 목표를 먼저 말하기보다, “이번 달에 네가 ‘내가 해냈다’라고 스스로 느끼고 싶은 건 뭐야?”라고 물어보는 편입니다. 목표라는 단어를 ‘성적’에서 ‘경험’ 쪽으로 살짝 옮겨 놓고 나니까, 아이도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얼굴로 자기 얘기를 꺼내는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주도 학습의 첫걸음은, 아이가 자기 입으로 “나는 이번에 이걸 해 보고 싶다”고 말해 보는 경험이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엄마가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목표를 아이 입에 억지로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안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작은 바람을 함께 발견해 주는 것. 그게 목표 단계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 아닐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계획은 현실적으로
목표를 아이가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바로 자기주도 학습이 완성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계획’에서 다시 여러 번 자빠졌어요. 예전의 저는 아이가 목표를 말하면, 곧바로 머릿속에서 계획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 그럼 월요일에 몇 쪽, 화요일에 몇 쪽…” 하고 제가 다 나눠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책에 적힌 계획표는 제 마음을 닮았고, 당연히 일주일 뒤에 계획표를 지키지 못했을 때 속상한 건 저와 아이 모두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계획도 아이 손으로 짜 보게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1) 먼저 목표를 ‘량’으로 다시 적어 보기 : “수학 문제집 20쪽”을 “하루에 몇 쪽씩이면 좋을지”로 나누기. 2) 아이에게 하루 스케줄을 직접 적어 보게 하기 : 학교, 학원,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까지 대충 적어 본 다음, 3) 그 안에 공부 시간을 끼워 넣게 하기 : 이때 제가 한 역할은 “현실 체크 요원”에 가까웠습니다. 아이가 월요일 칸에 “수학 10쪽, 영어단어 30개, 독서 1시간”이라고 적으면, 저는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월요일에 축구학원 있지? 집에 오는 시간 생각하면, 이 세 가지를 다 하면 몇 시쯤 될까?” 아이가 “아… 10시 넘겠네…”라고 말하면, 저는 “그럼 이 중에서 네가 꼭 지키고 싶은 건 뭐야? 혹은 양을 줄이고 싶은 건 뭐야?”라고 다시 돌려줬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그럼 월요일에는 수학 5쪽만 할래요. 나머지는 화요일에 조금 더 할게요”처럼 스스로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여겼던 건 ‘여유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계획표가 빈칸 없이 꽉꽉 채워져 있어야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짜 놓으면, 실제로는 하루만 사고가 생겨도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친구 생일 파티에 가게 되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지거나 할 경우 계획 전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일주일 중 하루, 혹은 이틀은 ‘예비일’로 비워두게 합니다. 아이에게도 이렇게 설명했어요. “계획에도 숨 쉴 구멍이 있어야 해. 그래야 중간에 틀어져도 다시 맞출 수 있거든.” 계획을 적을 때는 형식도 최대한 단순하게 했습니다. 예쁜 플래너를 사 주면 처음 며칠은 열심히 쓰다가 금방 포기하길래, 그냥 A4용지 한 장에 요일을 7칸으로 나누어 쓰도록 했습니다. 중요한 건 디자인이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눈에 볼 수 있는가, 끝난 일을 체크할 수 있는가” 두 가지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함께 체크 표시를 하다 보면, 작은 성취감이 쌓이는 것도 괜찮은 보너스였습니다. 여기에 챗GPT 같은 도구를 ‘계획 도우미’로 쓰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과학 시험이 일주일 뒤인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할 때, 우리는 챗GPT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초등학생이 과학 단원평가를 일주일 동안 준비하려고 해. 하루에 30분씩 공부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나누어 공부하면 좋을지 계획을 짜 줘.” 그러면 대략적인 계획이 나오고, 그걸 아이와 함께 보면서 “이 중에서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건 뭐고, 조금 줄이고 싶은 건 뭐야?”를 다시 적어 보았습니다. ‘그냥 복붙’이 아니라 ‘참고해서 우리 집 버전으로 바꾸는 작업’이 되도록 신경 썼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번 주 계획은 제가 먼저 짜 볼게요. 끝나고 나서 한 번 봐 주세요.” 물론 여전히 과하거나 허술한 부분이 있어서 함께 수정해야 하지만, 예전처럼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짜 주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계획은 결국 아이의 생활과 체력, 리듬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의 손에서 나와야 오래 간다는 걸, 이 과정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실행이 되는 시스템
목표도 아이가 말하고, 계획도 같이 세웠는데, 막상 한 주가 지나면 절반밖에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다시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 “그래서 또 뭐가 문제야?”라고 따져 묻고 싶어졌지만, 그러면 우리 둘 다 지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행 습관’을 완벽하게 만드는 대신, 일부라도 꾸준히 지켜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바꿔 본 것은 “실패를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계획표에서 지키지 못한 날을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치며 “여기 또 안 했네”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계획표 보면요… 초록색(성공)이 빨간색(실패)보다 많아도 자꾸 빨간색만 보여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의도치 않게 아이에게 ‘실패 감각’만 키워주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성공한 날에만 표시를 하기로 했습니다. 계획을 100% 지킨 날에는 큰 동그라미, 70% 정도 지킨 날에는 작은 동그라미, 50% 미만인 날에는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는 식으로요. 그러면 아이가 한 달 치를 한번에 볼 때, ‘내가 한 날들’이 눈에 더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이 해냈네?”라는 감각이 생기면, 다음 달에도 해 볼 의지가 조금은 더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실패도 알려주어야 반성하고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할 줄 알았는데 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해 본 방법은 ‘시작 장벽’을 낮추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시작이 제일 싫어요”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규칙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하기 싫은 날에도 딱 5분만 시작해 보기.” 수학문제집을 펴고 5분 동안 한 문제만 풀어도 되고, 영어단어를 5개만 외워도 됩니다. 타이머를 5분으로 맞추면, 아이도 일단 자리에 앉는 것까지는 해 줄 수 있겠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5분을 시작해 놓으면, 절반 이상은 5분을 훌쩍 넘겨 15분, 20분까지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시작했으니 그냥 좀 더 해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같았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봐, 오늘도 네가 네 자신을 움직였네”라고 꼭 짚어주었습니다. 실행을 돕기 위해 가족의 도움을 빌리기도 했습니다.저도 제 할 일을 적어서 같은 시간에 함께 시작하는 겁니다. 아이는 수학과 영어를, 저는 집안일 정리나 책 읽기를 하는 식으로 아이와 함께 시작하기를 합니다.. 시작할 때는 “각자 20분만 집중해 볼까?”라고 말하고 타이머를 눌렀습니다. 타이머가 울리면 서로에게 “어디까지 했어?”라고 가볍게 물어보는 정도로만 마무리했습니다. 이 작은 의식이 꾸준히 쌓이니, 아이도 “혼자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하는 루틴”으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디지털 도구도 실행 단계에서는 ‘보조 장치’ 정도로만 쓰려고 했습니다.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날에는 포모도로 타이머 앱을 사용했고, 목표 달성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간단한 스프레드시트에 날짜와 한 일을 기록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쓰더라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정한 일을 조금이라도 해 봤는가.” 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거 같습니다. 아이에게도 늘 이렇게 말해 줍니다. “완벽하게 하는 사람보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하는 사람이 결국 자기주도 학습을 하게 되는 거야.” 결국 실행 습관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게 시작해서 끝까지 가 보는 경험에서 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끝까지를 혼자서만 책임지게 하기보다, 옆에서 같이 체크해 주고, 넘어졌을 때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 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는 걸, 저는 요즘 매일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하면 멋있고 거창해 보지만, 제가 아이와 함께 경험해 보니 결국 세 가지 질문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이건 엄마가 정한 목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해 보고 싶다고 말한 목표인가?” 둘째, “그 목표를 하루하루의 생활 속으로 현실적으로 나누어 넣는 계획이 아이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가?” 셋째, “실행이 흔들리는 날에도, 우리는 실패를 탓하기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과 말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완벽한 자기주도 학습이 당장 만들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오늘 아이와 딱 하나만 해 본다면, 주말 저녁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놓고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에 네가 ‘내가 해냈다’라고 느끼고 싶은 공부 목표 한 가지만 써 보자.” 그 한 줄이, 우리 아이의 자기주도 학습습관을 만드는 첫 번째 씨앗이 되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