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 중 하나가, 아이가 무언가에 실패하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봐”라고 스스로를 낙인찍는 모습을 볼 때였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진로, 미래직업, 스펙 이야기가 너무 일찍부터 아이 귀에 들어가는 시대에는, 한 번의 실수나 실패가 아이 마음속에서 너무 큰 의미로 부풀려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아이에게 실패를 없애 주는 부모”가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법을 같이 연습하는 부모”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글에서는 제가 실제로 아이와 겪었던 실수·실패 장면들을 바탕으로, 그 순간에 부모가 어떤 피드백을 건네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솔직하게 나눠 보려고 합니다.
실패를 다루는 부모 역할, 실수 들여다 보기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평소보다 표정이 유난히 어두워 보여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구겨진 시험지를 꺼내 보여 줬습니다. 생각보다 점수가 많이 낮았고, 빨간 펜으로 표시된 틀린 답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제 입에서 튀어나오려던 말은 솔직히 “아니, 이걸 왜 이렇게 풀었어? 여기 지난주에 같이 봤던 거잖아”였습니다. 그런데 아이 얼굴을 잠깐 더 보니, 이미 자기 자신에게 충분히 화가 나 있고, 실망해 있는 표정이라. ‘지금 내가 또 “왜”라고 캐묻기 시작하면, 이 아이 마음은 어디로 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른 말부터 해 봤습니다. “음… 오늘 시험, 너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웠겠다. 속상하지?” 아이는 눈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진짜 너무 속상해요. 공부한 것 같은데 자꾸 실수해요. 나 그냥 수학 포기할까 봐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예전에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저도 학생 때 시험만 끝나면 “나는 수학 머리가 원래 없는 사람이야”라고 단정해 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에게 예전처럼 “더 열심히 해야지” 같은 말 대신, 솔직한 제 경험을 꺼내 보았습니다. “엄마도 너만 했을 때 자꾸 실수할 때가 있었어. 그래서 ‘나는 원래 이 과목이 안 맞나 보다’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시험 볼 때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실수가 많았던 거더라.” 그다음에야 시험지를 펼쳐 보면서, 우리 둘이 나란히 앉아 틀린 문제를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예전에는 바로 “여기 계산 틀렸네, 이건 공식 잘못 썼잖아”부터 짚었다면, 이번에는 먼저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이 문제 풀 때, 너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지나갔어?” 아이는 “시간이 없어서 빨리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에 문제를 너무 오래 잡고 있어서 뒤에 건 대충 봤어요” 같은 말들을 꺼내 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이 시험이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과 마음 관리의 문제’라는 게 조금 더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틀린 문제 자체보다, 틀린 문제를 만들게 된 상황을 먼저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시험 볼 때 시간을 어떻게 나눴는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그걸 적어 보고 나서야, 아이는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앞부분에서 시간 너무 오래 안 쓰고, 모르겠는 건 표시만 해 두고 넘어가 보는 연습을 해 볼까요?”라고 아이가 스스로 제안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지금 이 아이는 점수가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마음속에 작은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실수나 실패 상황에서 첫 마디는 절대 ‘왜’로 시작하지 말자. “왜 이렇게 했어?”는 아이 마음속에 ‘너는 또 틀렸다, 설명해 봐라’라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신 “속상하지?”, “어떤 부분이 특히 아쉬워?”,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처럼 감정과 상황을 먼저 물어보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 차분해졌을 때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해 보면 좋을까?”라는 질문도 훨씬 덜 공격적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실패를 ‘고쳐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아이 마음을 만져 볼 기회’라고 생각해 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저도 자주 실패합니다. 욱해서 “대체 왜!”라고 소리칠 때가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 지금은 나도 실패를 잘 못 다루고 있구나”를 인정하고, 아이에게 “아까 엄마가 말이 너무 날카로웠지? 미안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라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 자체가, 아이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실패를 다루는 어른의 모델’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 뒤 피드백
실수를 공감해 주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그다음 단계인 “피드백”에서 저는 자주 막혔습니다. 피드백을 잘 전달해 주고 싶은 고민이 많아지다보니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아이가 한참 울다가 조금 진정된 순간이면, 제 입에서는 어느새 “그러니까 평소에 좀 더 제대로 하지 그랬어”, “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같은 말이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이게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고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 축제 무대 예선에서 떨어지고 돌아온 날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아서인지, 집에 오는 길 내내 말없이 걸어 들어오더니, 결국 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았습니다. 한참 뒤 제가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니, 아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노력해도 소용없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졌어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같이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반박과 위로가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경험이 남았잖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떨어져야지 더 성장하지” 같은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말은 줄이고, 아이 옆에 그냥 앉아 이렇게만 말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했는데 떨어졌으니, 지금 네 마음에는 ‘허무함’이랑 ‘화’가 같이 있을 것 같다.” 아이는 한참 있다가 겨우 “맞아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충분히 울고 나서, 우리는 한 걸음 떨어져서 이 일을 ‘사건’이 아니라 ‘데이터’처럼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종이 한 장을 꺼내 크게 두 칸으로 나누고, 한쪽에는 “이번에 잘한 점”, 다른 한쪽에는 “다음에 다르게 해 볼 점”이라고 적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갸웃하길래, 제가 먼저 예시를 하나 들었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이번에 네가 발표 원고를 스스로 고쳐가며 연습한 건 진짜 잘한 점 같아. 그래서 여기에 ‘원고를 책임지고 준비함’이라고 적어 볼게.” 그러자 아이도 조금씩 말을 보탰습니다. “원고 외우는 건 잘한 것 같아요. 중간에 대본이 생각이 안 나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잘한 점” 칸을 먼저 채워 나갔습니다. 그 다음에서야 “다르게 해 볼 점”을 써 내려갔습니다. “긴장했을 때 시선이 바닥으로만 갔던 것 같아요”, “처음 인사할 때 목소리가 너무 작았어요”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매 항목마다 한 가지씩만 ‘다음에 적용해 볼 방법’을 적었습니다. “시선을 관객에게 보내기” 항목 옆에는 “다음에는 3명만 골라서 그 사람들을 번갈아 보면서 말해 보기” 같은 식으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이 과정을 지나고 나니, 아이 표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떨어져서 속상한 건 똑같은데, 다음에는 뭘 바꾸면 좋을지는 알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좋은 피드백은 ‘넌 왜 그랬어’가 아니라, ‘우리가 다음에 뭘 바꿔 볼까’를 함께 찾게 해 주는 말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실패 상황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평가’인가, 아니면 ‘분석’인가? 이 말이 아이를 더 움츠러들게 할까, 아니면 다음 행동을 상상해 보게 도와줄까? 예전의 저는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혼내는 것, 반성문 쓰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려고 합니다. 피드백은 결과를 꾸짖는 시간이 아니라, 과정을 해석해 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에게도 솔직하게 말해 줍니다. “실수했을 때 피드백 받는 건, 너를 혼내려는 게 아니라, 같이 ‘실험 노트’를 정리하는 거야. 어떤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한 번 적어 보는 거지. 그래야 다음에 다른 실험을 해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설명해 주니, 아이도 조금씩 피드백을 덜 무서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가끔은 먼저 “엄마, 오늘은 피드백 회의 한 번 할까요? 이 부분은 제가 봐도 좀 아쉽긴 했어요.”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우리 둘이 조금씩 성장마인드셋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집니다.
실패와 성장 연결하기
요즘 진로와 미래직업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도 점점 더 ‘결과 중심’으로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저 친구는 벌써 코딩 학원 다녀요, ○○는 영어 발표도 잘해요,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요…”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제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뭔가에 실패했을 때, 제 속마음은 이렇게 소리치곤 합니다. ‘이러다가 뒤처지는 거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조금만 더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면, 결국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한 번에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 실패를 성장의 재료로 바꾸는 능력”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실제로 경험으로 몸에 익히게 하는 게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짜 진로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아이가 실패했을 때, 의식적으로 ‘아직’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 보려고 합니다. 아이가 “나는 발표를 못해요”라고 말하면 “너는 아직 발표가 익숙하지 않은 거야. 못하는 게 아니라, 연습량이 부족해서 덜 익숙한 상태인 거지.” 아이가 “나는 수학 머리가 없어요”라고 하면, “너는 아직 수학에서 재미를 느끼는 방법을 못 찾았을 뿐일 수도 있어. 우리가 해 봤던 방법이 너랑 안 맞았을 수도 있고.” 라고 고쳐 말해 줍니다. 한 번은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엄마,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지금 이렇게 자꾸 실패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질문 속에는 “실패하는 사람은 꿈을 이룰 자격이 없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책에서 본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데리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보기엔, 꿈을 이루는 사람은 실패를 안 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많이 했는데도 ‘나는 아직 갈 길이 남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 그 뒤로 우리는 집에서 “아직 리스트”라는 걸 한 번 써 봤습니다. 공책 한 페이지를 반으로 나누고, 왼쪽에는 “지금 잘 안 되는 것들”, 오른쪽에는 “그래도 언젠가는 조금 나아졌으면 하는 것들”을 적었습니다. 지금: 발표할 때 목소리가 작다 → 아직: 10번 중 3번은 큰 목소리로 말해 보고 싶다. 지금: 수학 서술형은 자꾸 빵점 맞는다 → 아직: 한 문제라도 부분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써 보고 싶다. 이런 방법으로 적다 보니 아이도 자기 실패를 ‘완전히 끝난 일’이 아니라, ‘진행 중인 이야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래 직업과 연결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엄마, 유튜버나 개발자, 디자이너 이런 직업들은 다 천재들이 하는 것 같아요”라는 아이 말에 저는 어릴 때 발표에 떨고, 시험에 떨어지고, 프로젝트가 망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나중에 그 경험 덕분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 보고 읽어 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줬습니다. “지금 네가 겪는 작은 실패들은, 나중에 네 진로 이야기를 할 때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어. 중요한 건, 그 에피소드를 ‘그래서 나는 포기했어요’로 끝낼지, ‘그래도 한 번 더 해 보기로 했어요’로 이어갈지야.” 물론 이렇게 멋있게 말한다고 해서, 제가 매번 성장마인드셋을 유지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아이가 실수하면 먼저 화가 날 때도 많고, “지금 장난할 때야?”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도 제 안의 ‘아직’을 떠올려 봅니다. “엄마도 아직 감정 다루는 연습 중이야. 나도 가끔 실패해. 근데 이렇게 다시 이야기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엄마의 성장 연습이야.”
아이에게 완벽한 어른의 모습만 보여 주는 것보다, 실수하고 피드백 받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인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어쩌면 아이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우리는 아직 가는 중이니까.” 이 메시지가 앞으로 아이의 진로와 미래를 지탱해 줄 하나의 문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아이의 실패를 조금 덜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해 보려 합니다.
실패를 다루는 부모역할을 거창하게 정리하자면 끝이 없지만, 제가 아이와 부딪히며 얻은 결론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실수한 아이에게 “왜 그랬어” 대신 “그럴 수도 있어, 그때 어땠어?”라고 물어보는 것, 실패 뒤 피드백을 “혼내기”가 아니라 “함께 분석하기”로 바꾸는 것, 그리고 결과로 아이를 단정짓지 않고 “넌 안 되는 애야”가 아니라 “넌 아직 가는 중이야”라고 말해 주는 것. 이 세 가지만 조금씩 실천해도, 아이가 실수와 실패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했던 작은 실수 하나를 골라,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떨까요. “이 일 때문에 네가 ‘나는 못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그냥 ‘아직’이라고 부르자. 그럼 다음에 뭘 다르게 해 보면 좋을까, 우리 같이 생각해 보자.” 그 한 마디가, 아이 마음속에 평생 가져갈 성장마인드셋의 씨앗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