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아이는 챗GPT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너는 바보야!", "멍청한 대답 좀 그만해"라며 인공지능을 함부로 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저는 묘한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기계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대화의 끝에 아이가 던진 한마디, "어차피 얘는 감정도 없는데 뭐 어때요?"라는 말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가 누구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중과 태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챗GPT를 어떻게 활용해서 숙제를 빨리 끝내고 영어 단어를 외울지는 가르쳤지만, 이 강력한 도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다뤄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윤리'와 '철학'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도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도구의 주인이 되기 위해, 저는 아이와 함께 우리 집만의 특별한 규칙, '우리 집 인공지능 윤리 헌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기술 활용법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지키는 실전 윤리 교육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디지털 인격'을 대하는 태도의 교육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나'에게는 감정과 인격이 있죠. 제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언어의 품격'이었습니다. "기계에게 굳이 존댓말을 써야 하나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공지능이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예의 바른 사람이라서 예의를 지키는 거야. 누군가 보지 않을 때, 혹은 상대가 반응하지 못할 때 네가 내뱉는 말이 바로 너의 진짜 모습이란다."
우리는 헌장 첫 번째 조항으로 '질문할 때 예의를 갖춘다'를 넣었습니다. "해줘", "가져와" 대신 "부탁해", "고마워"라는 단어를 섞어 쓰기로 했죠. 신기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함부로 명령할 때보다 정중하게 부탁할 때, 아이는 자신의 질문을 한 번 더 다듬고 신중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공지능을 하대하는 습관은 타인을 하대하는 습관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인공지능에게조차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훈련은 아이의 언어 습관 전반을 우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계를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디지털 시민 의식'의 기초를 닦는 과정입니다. 아이는 이제 AI를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식을 탐구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기술의 홍수 속에서 아이의 인성이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한 닻을 내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정직함과 책임
두 번째로 고민한 지점은 '정직'이었습니다. AI가 써준 글을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학교에 제출하는 '대필'의 유혹은 아이들에게 매우 강력합니다. 또한, AI가 내놓는 그럴듯한 거짓말(할루시네이션)을 그대로 믿고 전파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헌장에 '정보의 출처를 밝히고, 스스로 검증한다'는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아이가 AI 도움을 받아 일기를 썼을 때, 저는 혼내기보다 물었습니다. "이 문장은 챗GPT가 생각한 거니, 네가 생각한 거니?"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AI가 추천해 줬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그 문장을 빼고 아이만의 서툰 표현으로 다시 채웠습니다. 완벽한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죠. AI는 참고 도구일 뿐, 창조의 주인공은 언제나 인간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헌장에 명시했습니다.
또한 '가짜 뉴스 생성 및 유포 금지'에 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재미로 지어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사례를 통해 설명해주었습니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네가 누르는 엔터(Enter) 키 한 번의 무게가 무거워진단다."라는 제 말에 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기술을 잘 쓰는 법보다 무서운 것은 기술을 무책임하게 쓰는 것이라는 진리를, 헌장을 작성하며 함께 가슴에 새겼습니다.
우리 집 AI 윤리 헌장, 함께 만드는 5계명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우리 집 AI 윤리 헌장'의 핵심 내용을 공유합니다. 부모님들도 거실에 이 5가지 원칙만 붙여두셔도 큰 교육적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 1. 질문의 품격: AI에게 질문할 때도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며, 비속어나 혐오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다.
- 2. 정직한 창작: AI가 작성한 내용을 자신의 것인 양 속이지 않으며, 도움받은 부분은 솔직하게 밝힌다.
- 3. 팩트체크 필수: AI의 답변을 맹신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출처(책, 뉴스 등)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 4. 타인 보호: 타인의 개인정보를 AI에 입력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보를 생성하지 않는다.
- 5. 주도권 유지: AI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마지막 판단과 최종 결정은 항상 내 머리로 직접 한다.
우리는 이 5계명을 예쁜 종이에 적어 컴퓨터 책상 앞에 붙여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저녁, 이 규칙을 잘 지켰는지 아이와 함께 '리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잘 지켰을 때는 칭찬을, 유혹에 흔들렸을 때는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나누죠. 이 과정에서 아이는 기술을 다루는 자제력과 '디지털 자존감'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규칙은 구속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기술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보호막이라는 것을 아이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결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옳은 일을 위해 고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최후의 교육이자 미래 역량의 핵심입니다.
윤리 헌장을 만든 후, 아이는 챗GPT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이 문제를 푸는 법을 가르쳐줘. 하지만 정답을 바로 알려주지는 마.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힌트만 줘."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제 마음속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이미 기술을 부리는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뜨겁게 인간다워져야 합니다. 오늘 밤, 아이와 함께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에 대해 대화해 보세요. 그 대화가 아이를 미래의 훌륭한 시민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