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저는 ‘아이를 키운다’는 말보다 ‘아이와 함께 디지털 환경을 같이 배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집 안에 있는 TV, 태블릿, 게임기뿐 아니라 학교 알림장, 학습 공지, 친구와의 대화까지 모두 미디어 안에서 오가는 시대라서, 부모 역할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제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에 부모가 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아이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집 안의 규칙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솔직하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완벽한 답이라기보다, 저처럼 고민하는 부모들과 나눌 수 있는 한 가지 참고하실만한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디어는 무조건 적이 아니다
솔직히 저는 원래 “미디어는 최대한 멀리, 책은 최대한 가까이”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TV나 태블릿을 최대한 안 보여 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밥 먹을 때 영상 틀어 달라고 하면 “우리는 밥상에서는 화면 안 보기”라며 단호하게 거절했고, 주말에도 되도록 공원이나 도서관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보내 준 가정통신문을 보고 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숙제가 보통 온라인 앱을 통한 숙제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아이는 학교 계정으로 접속해 선생님이 올려 주신 영상을 같이 보자고 했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였는데, 내용도 좋고 구성도 알기 쉽게 되어 있어서 저도 집중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다 본 뒤 아이가 “엄마, 이거 책으로만 읽었으면 잘 이해 안 됐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미디어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보 전달 방식이 달라졌을 뿐인데, 저는 예전에 제가 자라던 방식만 옳다고 붙들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저도 조금 마음을 열고, 아이가 어떤 미디어를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히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라고 불안해하기보다, 실제로 어떤 채널과 어떤 영상을 보고 있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그 안에서 아이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함께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옆에 앉아서 같이 영상을 보다 보면 “이 부분은 왜 웃겼어?”, “이건 조금 과장된 것 같지 않아?” 같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고, 아이도 자기가 보는 세계를 부모와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느낀 점은, 아이에게 미디어를 전부 막아 버리면 잠시 편할 수는 있지만, 지금도 AI를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데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더욱 발전된 미디어와 디지털 세상 속에 살게 될 텐데 언젠가는 혼자서 그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부모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판단해야 할지 아이는 혼란스럽고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미디어를 “위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같이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걱정은 많습니다. 자극적인 영상, 광고,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를 아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그럼 이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시대 부모역할의 첫 번째는, 미디어를 적이 아니라 ‘함께 배워야 할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같이 보자”로 바꾸니 생긴 소통의 변화
아이와 미디어를 두고 가장 많이 싸웠던 시절이 있습니다. 숙제도 다 끝난 것 같고, 시간이 애매할 때 아이가 늘 말하곤 합니다. “엄마, 영상 조금만 볼게요. 진짜 조금만…” 처음에는 “조금만”이라는 말을 믿고 허락을 했지만, 조금만이 조금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10분만 보겠다고 눌러놓고 40분, 1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더 엄격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보지 마. 영상 안 보는 게 제일 좋아”라는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하게 막기 시작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제가 있는 곳에서는 영상을 안 보는 척하다가, 제가 자리를 비우면 몰래 보려고 하거나, 제가 방에 들어오면 황급히 화면을 꺼버리는 행동이 늘어난 거예요. 나중에는 검색 기록을 숨기려 하거나, “엄마는 어차피 이해 못 할 거야”라며 대화를 피하려는 기색까지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너무 “금지”만 외치다가 아이가 통제가 안 될때는 어떻게 될까 올 것 같아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 내서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도 사실 영상 보는 거 좋아해. 근데 네가 너무 오래 보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거야. 우리 한번 같이 볼까? 네가 좋아하는 채널이 어떤 건지 엄마도 알고 싶어.” 아이는 처음에 살짝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제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걸 느꼈는지 좋아하는 몇 가지 채널을 보여줬습니다. 같이 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제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여기서 왜 웃긴 거야?”라고 묻고, 조금 과하다 싶은 장면이 나오면 “이 부분은 엄마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너는 어떠니?”라고 제 느낌을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보지 마” 대신 “같이 보자”로 태도를 바꾸고 나니, 신기하게도 아이의 반응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영상을 끄라는 말에 무조건 반항하던 아이가, 요즘은 “엄마, 이거만 보고 끌게요. 오늘은 두 편까지만 보기로 하자”라고 스스로 제한을 제안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또 학교에서 친구들이 보여준 영상 중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엄마, 이런 영상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같이 한 번만 봐 줄래요?”라고 먼저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디지털 시대 부모와 자녀의 소통은 ‘허락/금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아이가 미디어를 사용하는 순간을 부모가 통제하려 들기보다, 그 안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함께 나누는 대화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아이가 보는 콘텐츠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이건 잘 모르겠다, 너는 어떻게 느꼈는지 알려줄래?”라고 묻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스스로 해석하고 설명해 보는 기회를 주는 그 순간들이, 결국 디지털 시대의 진짜 소통 연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만든 우리 집 디지털 규칙
미디어를 적이 아니라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아이와 같이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렸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용 시간은 늘어날 수 있고, 공부보다 영상이 더 재밌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시점에는 ‘우리 집만의 디지털 규칙’을 분명히 세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제가 일방적으로 정해 버리면 또다시 숨기고 몰래 보는 패턴이 반복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아이를 ‘규칙 만드는 회의’에 직접 참여 시키기로 했습니다. 주말 오후, 간식을 꺼내 놓고 종이와 펜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 디지털 위원회 회의야. 엄마도 규칙이 필요하고, 너도 네 입장을 말할 수 있어. 우리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약속을 같이 만들어 보자.” 처음에는 아이가 웃더니 금세 진지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엄마가 걱정되는 점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눈 건강, 숙제 밀림, 그리고 잠자기 전까지 화면을 보는 습관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너는 뭐가 제일 불편해? 혹은 꼭 지키고 싶은 건 뭐야?”라고 물어봤습니다. 아이의 요구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아무 때나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놀 시간 다 끝나고 나서라도 하루에 최소 30분이상은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에 이것저것 써 가며 타협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온 규칙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1) 평일에는 숙제와 할 일을 끝낸 뒤, 저녁 9시 전까지 영상 시청은 하루 30분 이내. 2) 주말에는 오전에는 다른 활동(외출, 책, 놀이 등)을 먼저 하고, 오후에 1시간 이내 허용. 3) 잠들기 1시간 전에는 모든 화면 기기 끄기. 4) 규칙을 어겼을 때는 일방적으로 혼내지 않고, 왜 어기게 되었는지 먼저 이야기 나누기. 이 약속들을 종이에 적어 냉장고에 붙이면서, 마지막 줄에 이런 문장도 함께 적었습니다. “이 규칙은 엄마와 oo이가 함께 정한 것이며, 서로를 위한 약속이다.” 아이는 자신의 의견도 반영된 규칙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지, 그날 이후로는 예전보다 훨씬 덜 숨기고, 스스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끔은 제가 깜빡하고 시간을 넘기려고 할 때, 오히려 아이가 “엄마, 우리 9시 전에 끄기로 했잖아요”라고 말해 주는 날도 있었습니다. 물론 규칙이 항상 완벽하게 지켜지는 건 아닙니다. 여행을 갔거나 아이가 너무 피곤한 날은 예외가 생기기도 하고, 저도 힘이 부칠 때는 “오늘은 그냥 보라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규칙을 무조건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 예외가 생겼을 때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려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예외로 시간을 늘렸지? 그 대신 내일은 어떻게 조절할까?”라고 묻는 식으로 이때도 아이와 함께 조율했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경험뿐 아니라, 규칙을 유연하게 조정해 보는 경험도 아이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서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부모역할에서 규칙은 아이를 묶어 두기 위한 족쇄가 아니라, 함께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우리 집 디지털 규칙’을 완성된 답으로 두지 않고, 아이가 자라면서 계속 수정하는 살아 있는 문서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과제 형태가 바뀌고, 아이의 관심사가 달라질 때마다 다시 회의를 열어 “지금 우리에게 맞는 규칙은 뭘까?”를 묻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의 중요한 성장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시대 부모역할을 거창하게 정의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제가 아이와 함께 겪으며 느낀 핵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미디어를 무조건 적으로 보지 않고, 아이가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함께 들여다보는 태도, “보지 마”라는 금지 대신 “같이 보자”로 바꾸며 그 안에서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듣는 소통, 그리고 일방적 통제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만든 ‘우리 집만의 디지털 규칙’을 통해 서로를 지켜 주는 경험입니다. 완벽한 규칙이나 정답은 없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늘은 아이에게 이렇게 먼저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요. “요즘 너는 어떤 걸 보고 있어? 엄마도 같이 한 번 보고 싶다.” 그 한 문장이, 디지털 시대 부모역할의 첫걸음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